숨어 있는 재앙.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재난은 "하늘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해로운 영향“ 의 말로 과거에는 홍수, 지진과 같은 천재인 자연재해를 지칭하였으나, 현대사회에서는 대규모의 인위적 사고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6년에 “일본 침몰” 이란 작품이 영화화되어 일본 사상 처음으로 관객 650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렇게 재앙은 인간에게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촌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쓰나미가 엄습하고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30만 명이 희생되었고 또한 2008년 중국 스촨성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수만 명이 사망했다. 2010년 중남미 아이티에서도 지진으로 인해 50만 명이 희생되는 재난이 발생했다. 이제는 그 규모가 점점 상상을 초월한다.
올해 튀르키예 지진은 터키 남동부 로마 시대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린 곳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며 선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한곳이다. 115년 안타키아에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 명이 사망한 곳이며, 526년에는 대지진이 일어나 25만여 명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황제 유스티누스 1세가 도시 재건을 시작했으나 2년 뒤 발생한 지진으로 또다시 파괴됐다.
그리고 지난 6일 발생한 1500년 만에 또다시 찾아온 재난이 튀르키예 지진이다. 인간은 이런 재난을 보고 사람들은 내심 하늘의 심판이 가까웠다는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일본에 지진이 일어난 후에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이 지진은 텐바수입니다”. “천벌” 즉 이 하늘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쏟아진 폭우로 저수지 둑이 무너져 뉴올리언스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뉴올리언스 시장인 레이 나긴 (Ray Fagin)은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했다. 도쿄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이 재난들이 하늘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 앞에 하늘의 재앙으로 생각하게 된다.
100년 만에 사상 최대의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에 발생한 강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수백 마리의 새 떼가 울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관측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다수의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상한 수백 마리의 새 떼가 직전 건물 상공을 시끄럽게 울면서 하늘을 빙빙 돌고, 나무에 빼곡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에 강진이 발생하기 직전 수백 마리의 새 떼가 울며 날아다니는 모습에 “지진 전조현상 같다”“새들은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 심지어 몇 주 전에 전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새들은 알고 있어 마치 그들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2001년 9월 중국 쓰촨성에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지진 하루 전날 이 지역에 수천 마리의 새 떼의 지진 전조현상 반응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연구에 따르면 새의 발에는 예민한 진동감지기관이 있어 지진이 발생할 때 생기는 미세한 지진파(P파)를 미리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번 시리아 국경과 인접한 튀르키예 남동부와 중남부 지역에서 규모 7.8의 강진에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현대는 인공지능 시대이다. 그런데 ‘밥’이란 말이 그것이 아침밥인지, 저녁밥인지, 강아지 밥인지, 시계태엽을 감는 것인지를 현재 처한 맥락에서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미래의 재난을 예고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신체와 욕구가 있지 않다는 철학자의 주장에 이견이 없다. 그런데 새들은 미세한 지진파(P파)로 미리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대적 영감을 가지고 살이야 한다. 인간은 시대적 영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재난은 성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성경은 이미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세상 종말 이전에 얼마 동안의 기간에 재난이 지속하리라는 것을 암시와 시대마다 전쟁과 천재지변이 있을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나게 될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