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종결..(終決)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태안자살방지생명지킴이협회장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http://cafe.daum.net/sangokli
사람은 한 세상 살다가 빈부귀천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삶에 생애가 마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잘 죽기를 원하고 있다..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그 삶을 비참하게 마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한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8년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심을 한다. 서울시장 3선 도전과 경남지사 출마, 그리고 국회의원 도전이다. 그는 서울시장 3선 도전을 선택 결국 성공을 하고 행정가로 강남·북 균형발전 기치를 내걸면서 한때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를 거쳐 세 차례 서울시장을 역임한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꼽혀온 정치인이다. 그런데 서글픈 모습이 작심한 듯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와룡공원에서 걸어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산속에서 삶에 종결을 하고 생을 마감하여 10일 0시20분쯤 성북동 삼청각 산 속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이유에 대한 오점을 남 김 것에 서글픈 일이다. 인간은 삶의 종결의 뒷자리가 좋아야 한다.
명대로 다 살다가 편안히 자리에 누워 죽음을 맞아하는 와석종신하는 것이 복이다..그런데 현직 서울 시장으로 그의 종말이 좋지 못했다. 근년에 검찰 수사 받다 목숨 끊은 역대 기업인·정치인 등 실태 10년간 83명이나 된다. 모두 화이트칼라로 72%가 정신적 압박·수치심에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반짝 반짝 작은 별 나는 네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 말은 서양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내가무엇인가?”의 노랫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품고 있는 수수께끼이다. 미국의 현대 신학자요 사상가인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의 저서인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서 “인간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언제나 인간은 자신을 괴롭혀온다. 즉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어떻게 살 것이냐의 결단을 찾는 첫 걸음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존재의 근원과 행방 그리고 목적과 이상에 대해서 궁극적인 질문을 갖고 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나의 생의 좌표를 어떻게 정하고 생의 방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신의 존재이다. 그 신이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으며 또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해하려고 절대자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칼빈 선생은 인간이 가져야할 지식은 하나는 신에 대한 지식이요, 또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인간상은 창조와 타락과 구원이라는 세 가지 원리에서 시작한다. 먼저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가 기본이다. 사람들은 질병 예방과 치료에 관계없이 많은 약을 의존을 하고 살아간다. 투약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해도 자신의 창조된 자기신체관리를 제대로 못함을 반성하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인간이 창조주를 믿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그래서 이성과 신앙의 차원은 동일한 영역이 아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요, 알 수 없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신앙이다.
합리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독교 신앙은 역설이요 모순이요 부조리다. 그렇다고 신앙은 이성의 질서를 무시하지 않는다. <마쓰오카 도시카쓰>는 일본에서 전후 첫 번째로 자살한 현직 장관이다. 농림수산상이였던 그가 2007년 5월 28일 의원회관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숨졌다. 그러면 그가 일국의 장관으로 살아가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할 것을 사전 알았을 까요?. 승승장구 할 줄 만 알았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국민과 지역구민에게 죄송하다’는 유서란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이런 유서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극단의 길을 택하지만 절대로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파스칼」은 신앙은 정신의 고차원의 도박이라고 했다. 도박은 어느 한 편에 던지는 것이다. 무슨 수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박은 불가지한 것에 나를 던지는 결단적 행위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에 내 생을 걸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없다는 편에서 되는 대로 막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나는 선택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진지하고도 성실한 도박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에 나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고로 신앙은 인생의 결단이요, 선택이요, 도박이요, 모험이다.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방법에 목숨을 걸었다고 사죄의 진정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불법·부정을 저지르고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고 마냥 웃으며 살아가는 지성인들이 있어 매우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