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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급변하는 시대의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 연구에 매우 핵심적인 분석이라고 봅니다.

          교회의 본질은 불변하되 선교의 장인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서, 패러다임의 매우 역동적인 전환과 변화는

          필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음

 

 

 

교회를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원글보기 :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02&fbclid=IwAR2pGJWOLVuS0rJvzPv2WDprckw-t9PXyOjUS58Q1Z80aDR2s3rGZwnaMt4



“식민도시, 유배 그리고 주변성: 이민목회의 새 패러다임을 찾아서”(Colony, Exile and Marginality: A Search for a New Paradigm for Immigration Ministry)-2

 

이 글은 2019년 4월1일에 있었던 버지니아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of Virginia) 제2회 학술공개강좌 “Diaspora 신학과 한인교회”에서 김영봉 목사가 발표한 것으로, '이민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에 이은 두번째 글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인해 그동안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과 대안이 틈틈이 제기 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반성과 대안이 계속 누적되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자주 ‘제 2의 종교 개혁’을 이야기 하는데,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과 대안이 누적되어 임계점에 이르면 그와 같이 전면적인 개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나기까지 이러한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선 자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의 패러다임이 노정해 왔던 문제들을 극복하는 동시에 전면적인 혁명의 시기를 앞당기는 일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절대 다수의 목회자들과 신도들을 지배하고 있는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세 가지의 사례를 살펴 보려 합니다. 아래에서 보게 될 세 가지 사례는 그동안 기독교계 안에서 제기된 수 많은 사례들 중에서 선택한 것입니다만, 학계와 교계에서 꽤 주목을 받았던 것들입니다. 이 사례들은 주로 북미주 안에서의 교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반성하면서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1) 식민 도시(Colony)

미국에서 가장 신뢰 받은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즈(Stanley Hauerwas)와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이 1986년 펴낸 <Resident Aliens: Life in the Christian Colony>(한글판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은 신학계와 교계에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은 현대 고전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듀크 대학교에서 함께 가르쳤던 두 사람은 공동 저작을 여러 편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이 책은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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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하우어워스(사진:플리커)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기독교인들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적 과제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 왔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분파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치밀한 논리와 신앙적 확신으로 이 주장을 계속 펼쳐 왔습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기독교가 미국 안에서 ‘다수자의 종교’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다는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목회자들과 신도들은 아직도 크리스텐덤을 꿈꾸고 있는데, 그것은 지나간 망상에 불과합니다. 저자들은 현재 목회자들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목회자들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그래서 그들 스스로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지, 우리로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175쪽)

달리 말하면, 지금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기존의 패러다임 안에서 성공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은 중심에 서는 것이며 지배력을 가지는 것이고 이 땅에서 번영하는(혹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에 있어서 성공하는 소수가 있지만 절대 다수는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성공하는 소수도 실은 외형적인 성공 아래에서 신음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일갈합니다.

싸움터에서 낙심하고 절망한 모든 목회자들에게(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군대다. 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패”보다 더 나쁜 일이 있다고, 그것은 바로 “성공”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218쪽)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에서 목회 성공은 실패보다 더 불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공은 신앙과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서 그만큼 벗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며, 그 성공으로 인해 목회자 자신은 마치 영업에 성공한 사람처럼 타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교회를 ‘식민 도시’(Colony)에 비유하고 신도들을 ‘거류민’(Resident Aliens)에 비유합니다. 저자들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 비유에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의 잔재가 들어 있습니다. 교회를 이땅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식민 도시’로 보는 것은 과거 미국 개척 시대의 사고 방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유 자체는 제국주의적인 잔재를 포함하고 있지만, 비유의 포인트는 받아 들일만 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이 세상의 다수자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을 버리고 낯선 문화와 생활방식에 에워쌓인 식민 도시로서 스스로를 정의해야 합니다. 두 저자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교회는 대안 공동체인 식민지를 세우도록 부름받았으며, 또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의 삶을 그리스도가 열어 놓았다는 사실을 세상을 향해 보여주는 징표와 신호가 되라고 부름받았다. (202쪽)

스탠리 하우어워즈가 다른 저작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거룩한 ‘성품의 공동체’(Community of Charact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안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라는 말은 이 세상과는 다른 삶의 가치와 질서로 움직여지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삶의 방식으로 매력을 발산 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합니다.

 

2) 유배(Exile)

최근에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의 목회학 교수인 리 비치(Lee Beach)는 <The Church in Exile: Living in Hope After Christendom>(한글판 <유배된 교회: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라는 책을 통해 북미의 변화된 상황 안에서 기존의 목회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북미 교회의 상황을 성경에 나오는 유배 상황에 비유합니다. 마치 낯선 나라에 잡혀 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오늘의 교회는 소수자의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리 비치 교수/ 리 비치 교수

그는 유배 상황에 처한 교회에 적실한 패러다임을 찾기 위해 구약성경의 유배 모티브를 연구합니다. 유배기에 활동했던 예언자들과 다니엘서, 에스더서 그리고 요나서를 통해 유배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거룩함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길을 모색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베드로전서에서 유배 모티브를 연구합니다.

리 비치의 접근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Resident Aliens>와 유사한 주장을 하지만 책의 절반을 성경적인 선례를 논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집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4세기에 시작된 크리스텐덤 패러다임도 성경 안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인정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포로기에 새롭게 등장한 ‘남은 자 신학’이나 유배지에서의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오늘 이 사회에서 소수자가 된 교회에게 큰 위로와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리 비치는 유배기에 처한 공동체와 신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의 선포’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배기에 지도적인 사역자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역할들 중 하나는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유배기의 교회에 필요한 희망은 낙관적인 느낌이나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신앙을 유지하고, 새로운 운동을 고무하고, 신앙이 유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선교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도록 허락하는 생성적인 희망이다. (204쪽)

사실, 소수자의 위치로 밀려난 교회와 사역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절망감 혹은 무력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 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하찮게 생각하고, 복음을 조롱합니다. 크리스텐덤의 패러다임 안에 있으면 이러한 상황이 절망감과 패배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유배 시대의 유대인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교회보다 더 소수였고 더 무시 당했고 더 박해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고 희망을 가질 이유가 그들에게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배라는 패러다임으로 지금의 현실을 보면 절망감과 패배감을 벗고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은 세속적인 수치에 근거한 희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에 근거한 희망입니다.

 

3) 주변성(Marginality)

1995년 드류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고 이정용 교수는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 (한글판 <마지널리티>)를 통해 미국 안에서 사는 소수자의 시각에서 신학과 목회에 대한 신선한 전망을 제시합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시아계 이민자의 경험과 시각에서 나온 작품이기에 주류 신학계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유럽 전통에서 백인들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소위 ‘주류 신학’이 보지 못하는 차원을 주목하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99D2084D5DCA545A0AA647이정용 교수도 역시 크리스텐덤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 패러다임은 북미의 주류 교회에도 통하지 않지만 북미에 있는 이민 교회들에게는 더욱 통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이민자로서의 소수자들의 상황을 잔디밭에 피어난 민들레꽃에 비유하는 자서전적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존재 자체로서 이미 소수자의 처지에 있는 이민 교회들이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세상에 중심에 서서 지배하려 하는 것이 가장 큰 패착임을 지적합니다. 현재 교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에 대해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나는 중심성이라는 한 단어로 현실 교회의 상황을 요약할 수 있다. 현실 교회는 중심주의적 동기에 깊이 빠져 있다. 중심부 이데올로기와 신념을 위한 위계적 구조에 근거해 가난한 사람, 소수자, 무력한 사람을 배제하고 통제한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의도한 교회의 핵심에 반대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주변인이었기에 주변성이 교회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중심성의 규범에 토대한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반대된다. (196쪽)

이정용 교수의 통찰은 북미 교회의 크리스텐덤 패러다임과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점을 동시에 겨냥합니다. 이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심부로 진격하게 만들고 따라서 신앙이
현세적인 번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도록 만듭니다. 그러한 경향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되지 못하게 만들고 교회를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정용 교수는 성공을 향한 욕망에 대해 이렇게 비판합니다.

사람들이 세속적인 영역이든 종교적인 영역이든 성공에 집착하는 동기 중 하나는 지배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다. 목회의 성공은 종종 예수-그리스도의 주변부적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배 사회의 중심부적 가치에 의해 판단된다.
(197쪽)

이정용 교수는 지금의 교회가 중심부에 서기를 추구하고 있는데도 교회는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교회가 더 이상 중심성의 중심에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205쪽)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교회를 진정한 주변성의 공동 체로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206쪽)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주변부 사람이며 종이라야 한다”(214쪽)고 말합니다.

‘주변부 사람’이 된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은유입니다. 그것은 먼저 그의 지향성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중심을 향하여 진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자리에 눈길을 두고 발길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누구와 연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중심부에 서서 중심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정용 교수는 “사회는 중심의 관점에서 주변을 규정하지만, 교회는 주변의 관점에서 중심을 규정해야 한다”(206쪽)고 말합니다. 그것은 또한 목회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물량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것은 중심성의 가치에 물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어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회의 초점이 될 때 주변성의 공동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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